대학교 1학년 중간고사 기간. 도서관 앞에는 신문사별로 매일매일의 신문들이 비치되어 있었고, 시험공부를 하다가 머리 식히러 나와 의미없이 신문을 들추던 내게 97학번 선배가 다가왔다. 사회면을 펴 주며 빈곤으로 인한 자살 기사를 보여주었고, 신앙인으로서 이 사태를 어떻게 봐야하는지 고민한 적 있냐고 물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가난이 인간의 존엄을 얼마나 바닥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지. 사회가 얼마나 양극화되어 굴러가고 있는지. 눈을 뜨게된.
그래서 내게 그 선배는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어준 크느존재인데 몇년 후 결혼을 하고 그 선배가 그렇게도 욕하던 대기업에 입사한 사실을 알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아니 충격이 아니라 어떤 배신감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어린 마음에 당장 전화를 걸어 이유도 묻지 않은 채 선배에게 원망과 분노를 쏟았고 선배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서 생계의 무거움을 견디다 못해 다단계에 빠진 그 시절 영초언니가 너무 슬펐다. 모진 고문과 수감생활은 몸은 힘들었을 지언정 역사와 대중앞에 떳떳했을텐데.
읽는 내내 그 선배 생각에, 이름 모를 수많은 '영초언니' 생각에, 수없이 울컥이며 책장을 넘겼다.
온전한 민주세상을 갈망하는 마음이 내게 남아있나?
자꾸만 현실에 안주하려는 못난 마음이 화끈거린다.
오늘 내가 지나온 이 하루는 영초언니에게 갚아야 할 빚으로 쌓인다. 아침은 절대 그냥 오지 않는다.
동틀 무렵 가장 어두운 그 순간을 지나온 모든 영초언니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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