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진단받게된 원인이 딱 하나는 아니겠지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곳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직장이었다.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떠오르는 기억들에 괴로웠는데, 정말 인생에서 삭제해버리고 싶은 시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참 신기하게도 시간이 조금 지났다고 찐하게 맺은 인연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이제는 만날 수 있는 용기를 내볼 마음의 근육이 조금 자라기도 했고.
미루고 미뤘던 동료와의 만남을 오늘 했다. 긴장됐는데 그 마음이 무색할만큼 소소한 대화가 끊이지 않았고, 많이 웃기도했다. 그간 만남을 미뤄왔던게 아파서였다는 이야기도 전할 수 있었다. 그랬었구나, 대수롭지 않은 듯 덤덤히 말해주는 그 마음에 나는 또 마음이 가벼워졌다. 만나고 나니 어제 헤어지고 오늘본 것 마냥 그저 반갑기만 한데 뭐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뭘 그렇게 주저했을까.
살아온 인생의 시간 중에 고작 7개월 앓았을뿐인데, 그 사건이 스스로에게도 큰 충격이라 여전히 자유하지 못한 듯 하다. 아프기 전 나를 알았던 사람들에게는 이다지 가볍게 꺼낼 수 있는 이야기인데 아프고나서 알게된 사람들에게는 쉽사리 입을 열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없었던 일로 여겨지지도 않아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왠지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은 불편함을 느낀다. 휴우... 지나가겠지. 자연스러워지겠지. 천천히 여유를 갖자.
생각해보니 약을 안먹은 지 거의 일년이 됐다. 약 없이 도저히 잠들 수 없을 것 같은 시간도, 어느 순간 터져버릴지 몰라 불안하던 공황도 언제 그랬는지 한참을 돌아봐야 생각이 날 만큼 멀어졌다. 갑자기 또 시작되면 어쩌지하는 걱정도 안한 지 오래다. 이제 정말 괜찮아 진걸까? 예전의 나로 돌아온걸까? 이런 생각도 잘 안든다. 그냥 지금의 나를 아주 객관적으로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는걸 아니까.
'소박스러운 일상 > 새벽이 빌려준 마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기이유 (4) | 2024.01.09 |
---|---|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올라올때면 (0) | 2021.07.16 |
존재의 핵심은 내 감정, 내 느낌입니다. (0) | 2021.02.27 |
누군가를 위해 울 수 있는 삶이기를 (0) | 2021.02.12 |
고무나무 가지치기 (0) | 2020.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