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달전부터 더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우울감이 괴롭히지 않고 잠을 잘 수 있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감사한일이다. 생을 마감하는 것이 내가할 수 있는 전부라고 여겨지던 어둠의 시간에서 이렇게 죽어버리는건 비겁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내가 아직 갚아야 할 빚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서다. 사라지는 순간까지 누군가에게 폐를 끼칠 순 없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고 그 길로 나에게 가장 안정감을 주는 사람인 언니집으로 들어갔다. 살아야해서.
내 발로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을 찾아갔던 그 첫 날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몇년을 넘게 업무때문에 수도 없이 찾아갔던 곳이지만 병원 유리문이 그렇게 무겁게 느껴진건 처음이었다. 의사를 만나기 전까지 느낀 긴장감은 또 한번의 위기였지만 의사는 하루에도 수십명씩 만나는 사람중의 한명으로 나를 덤덤하게 대했고, 신기하게 그 덤덤함이 내 긴장감을 해소해주었다.
약의 도움으로 잠을 자고 기운을 차린 후 꾸준히 운동을 시작했고 일도 하게 됐다. 덕분에 오랫동안 기다려준 가까운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할 에너지도 생겼다. 그 다음은 상상도 못한 일을 마주했는데, 내가 나아지고 있다는 소식에 그들이 울었다는 것이다. 미혜가, 지선이가, 봄나레가, 정준오빠가 그랬다. 아뇨는 퍽하면 울었고 나도 함께 울었다. 그 마음이 벅차서, 고맙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될만큼 감격스러워서 조금은 더 살아도 되겠다 생각했다.
아직은 여전히 우울함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못하고 어둠속에 있을 때도 있다. 그럴때마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고, 나는 벗어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어준다. 내 힘이 아닌 나를 위해 울어준 사람들이 거울처럼 나를 빛내준다. 나 또한 누군가를 위해 울 수 있다면, 숨기지 말고 그 사람에게 그 마음이 가닿게 울어주기로 했다. 웃음도 울음도 아끼지 말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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