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스러운 일상/일상의 취미

[검도일기5] 2단 승단심사를 보다

그레이스:) 2021. 4. 4. 20:14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2015년 가을? 즈음에 동네에 검도관이 처음 생겼다. 소박하게나마 검도에 관심이 있었던 언니와 나는 그렇게 운명적으로 면목검도관의 첫 단원이 되었다. 관장님은 너무나 검도를 애정하는 분이셨고 우리 검도관에는 유단자가 아무도 없었다. 만일 내 첫 검도관이 고단자가 가득했던 규모가 큰 곳이었다면, 관장님이 선수출신이고 도장 운영을 오래하신 경험자셨다면 나는 검도를 더 일찍 그만두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몇년 후 도장은 더 큰 규모의 옥수동으로 옮겨갔다. 집에서 무지 멀어졌지만 관장님이 너무 좋아서 고민 없이 옥수로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2017년 9월 24일, 검도를 시작하면서 그래도 초단은 따자라고 했던 첫 목표를 이루었다.


그리고는 한참을 쉬었다. 바빴고, 긴 여행을 다녀왔고, 아팠고 멀기도 멀고, 코로나로 도장이 한참 휴관을 하고.... 그렇게 여러 이유로 쉬어칼을 2년 가까이 하다가... 마음을 다잡고 작년 10월부터 다시 도장을 나갔다.
왜 다시 검도를 해야할까를 고민할 때 지난 수련 중 하나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그날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수련을 하고 돌아가며 연습을했고, 권사범님과 대련중 갑자기 나를 멈춰세웠다. "승부를 하고자하는 마음은 있어요?" 그 한마디에 나는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연습이라해도 승부였는데, 내 칼에 상대가 맞으면 아플까 노심초사 하며 타격지점에 가까이 갈 수록 더더욱 물칼이 되버리고마는 내 심리를 꿰뚫은 충고였다.
이 말이 나에게는 검도뿐 아니라 내 일상 자체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승부의 순간이 분명히 있고 상대를 배려하는 것과는 별도로 단단하게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 순간에도 나는 나를 지키지 못했다. 그리고 상대를 배려하겠다고 결정한 내 행동은 상대뿐 아니라 나 자신까지 지키지 못한 적이 꽤 많다. 그렇게 승부심이 필요하다는 마음으로 다시 검도관을 찾았다. 처음 검도관을 갔을 때랑은 확연히 다른 이유다.

"검도는 단순히 이기기 위해서 수련하는 것이 아니며 강인함과 윤리성을 수련하는 것입니다. 단지 승리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로서 정신수양과 상대방을 서로 존중하라고 검도는 강조합니다."
누군가의 검도 소개글을 관장님이 소개시켜주셨다. 공감이 되고, 그 마음을 수련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물칼이지만, 내면의 힘을 기르는 중요한 시간이다.

그리고 4월 3일, 정신차려보니 2단 심사를 봐버렸네. 단순히 내 자신이 조금 더 마음을 다잡고 검도하고 싶어서 보기로 한 심사인데, 막상 준비를 하면서는 도장에서 2단이 되는 것의 의미를 너무 간과했다는 생각을 했다. 고단자 선배님들이 그랬듯 이제 갓 검도를 접하는 분들에게 멋있는 자세와 타격, 그리고 예를 보여주면 좋겠다는 욕심이 꼬물꼬물 올라온다. 검도 참 신기한 운동이다.


초단때는 서울시에서 주최한 심사라 서울과기대에서 큰 규모로 진행했는데, 이번 심사는 코로나로 인해 지자체에서 작은 규모로 진행되었다. 확실히 참여 인원도 적었고, 심사장에도 심사자 외에는 출입이 안됐다. 그래서 심사 영상을 남기질 못한게 아쉽다. 그래도 이번부터 본국검법이 심사에서 제외됐다는 소식에 쾌재를 불렀다. 다 외운 것 같아도 불안하고 은근 긴장됐는데 그 시간만큼 다른 준비에 더 집중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심사는 2인1조라 함께하는 파트너와의 합도 중요한데 연배가 좀 있으신 어르신과 한 조가 되었다. 우려와는 달리 연격과 대련에서 칼이 굉장히 깔끔하고 검도의본도 정확하게 숙지하고 계셨다. 마치고 인사를 나눌 시간이 좀 있었는데 서로에게 고마워했다. 그분은 검도를 늦게 시작했는데 진심으로 검도를 대하는 모습이 보여 멋졌다. 함께 승단해서 다음 심사때도 만나요! ㅎㅎㅎ


우리 도장에서는 초단 2명, 2단 2명 이렇게 4명이 함께 심사장에 다녀왔다. 비가 많이 온 날이었는데 운전해주신 검우님께 넘나리 감사. 심사를 마치고 우리 도장에 돌아오니 긴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듯한 아늑함이 느껴졌다.
그냥 취미로 하는 검도에 승단이 뭐 그리 중요할까 생각했는데, 하면 할수록 그 생각이 달라지는 것 같다. 성취감은 기본이고 도장에 대한 애정도 뿜뿜 오르고 무엇보다 검도에 대한 마음이 더 깊어진다.

다 써놓고 보니... 찔리는건... 이렇게 말하지만 또 도장을 가기 전까진 수만번 갈까말까를 고민할 나를 알아서다. ㅋㅋㅋ